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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패싱 by 넬라라슨 :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동질감

by 곰푸 2022.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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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시일 : 2021.11.10.
  • 장르 : 스릴러, 드라마
  • 국가 : 미국
  • 러닝타임 : 98분
  • 감독 : 레베카 홀
  • 주연 : 테사 톰슨(아이린), 루스 네가(클레어), 안드레 홀랜드(브라이언),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존)

백인 행세하기

아이린과 클레어는 흑인 혼혈아로 흑인임을 밝히지 않으면 백인으로 오해할 만큼 밝은 피부색을 갖고 있습니다. 둘은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자랐지만 클레어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클레어가 백인 이모들을 따라 떠나며 연락이 끊기고 맙니다. 무더운 여름날, 백인들만 출입할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에서 둘은 뜻밖의 재회를 하게 됩니다. 클레어는 흑인 혼혈임을 숨긴 채 재력 있는 백인 인종주의자 '존'과 결혼하였고 아이린은 할렘가에 살며 흑인 의사 '브라이언'과 결혼하였습니다. 남편의 아내로, 아이의 어머니로 재회한 둘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인생에 매력을 느낍니다. 처음에 아이린은 클레어를 밀어내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에 그녀와 여러 모임을 가지게 되죠.

아이린은 자신의 남편 브라이언이 클레어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기 시작하고 이야기는 점점 비극으로 흘러갑니다. 클레어는 흑인을 서슴없이 '검은 악마'라고 부르는 인종 차별주의자 존의 눈을 피해 할렘가에서 열리는 여러 흑인 모임에 참여하며 여태 느끼지 못했던 소속감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같은 일탈도 순간이었죠. 결국 클레어의 남편은 클레어가 흑인 혼혈임을 알게 되고 흑인들이 모인 파티에서 클레어를 찾아와 윽박지르고 맙니다. 순간 아이린의 시야에 있었던 클레어는 창밖으로 떨어지고 즉사하고 맙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소외감이 주는 동질감

영화 <패싱>은 그야말로 "어디에나 속할 수 있기에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역설적인 경계에 선 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passing의 문학적 뜻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시간/세월의) 경과

2. 소멸, 죽음

3. 잠깐의, 일시적인

 

하지만 영화와 원작소설 <패싱>에서 쓰인 뜻은 "유색인종이지만 백인으로 오해받아 백인들이 누리는 특혜(white privilege)를 받는 것"입니다. 동명의 원작 소설은 미국의 할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여류작가 넬라 라슨의 장편 소설로 1929년 간행되었습니다.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경제적 호황기를 맞았지만 그와 동시에 소비만능주의와 허무가 팽배하던 시기였습니다. 넬라 라슨은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혼혈로 태어났습니다. ODR(One Drop Rule) 즉, 흑인의 피가 단 한 방울이라도 섞였다면 흑인으로 간주하던 당시 시대에서 넬라 라슨이 겪었을 차별과 소외가 어땠을지는 감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후 백인 어머니가 백인 이민자와 재혼하자 백인 가정에서 유일하게 다른 자신의 피부색을 의식하며 평생을 소외된 채 살아왔다고 합니다. 소설 <패싱>은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한국 사회도 이제는 단일민족, 한민족이라 말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인종이 어우러져 사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흑과 백이라는 인종 차별을 숨쉬듯 겪어보지 않았기에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내내 인종 차별보다는 이 사회에 만연한 온갖 차별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클레어와 아이린은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밝은 피부색으로 인해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들키고 싶지 않은 흑인의 모습을 감추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누구나 보이고 싶지 않은,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 존재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타인이 불쑥 그 모습을 들추어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함께 갖고 살아가죠. 그래서인지 <패싱> 전반을 관통하는 어디에나 속할 수 있기에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소외감이라는 감정에 동질감이 느껴졌습니다.

무려 100여 년전의 소설인데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이유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누구보다 가정에, 조직에, 그리고 사회에 동질감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그 어떤 시대보다 SNS와 미디어를 통해 또 다른 가면을 쓴 나라는 존재를 쉽게 만들어내고 타인의 가면을 쉽게 들추어버리는 사회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몸을 던져서라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이 나에게도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게 하는 책과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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