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기록

내 심장을 쏴라 by 정유정 작가

by 곰푸 2022. 3. 7.
반응형

막무가내 추천사, 이 책 제발 꼭 읽어보세요

2009년 <내 심장을 쏴라>가 발행된 당시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배회하던 중 흘림체 제목에 못생긴 캐릭터 두 병이 춤추는 듯이 그려진 표지에 매료되어 해당 책을 구매하였습니다. 그렇게 정유정 작가님과, <내 심장을 쏴라>라는 제 인생 책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심장을 쏜다는 문구와 죄수복을 입은 듯한 남성이 등장하는 표지였기에 단순히 범죄 수사물인데 코믹한 요소가 가미된 책인가 보다 하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고 이후 한 동안은 지인들에게 해당 책을 선물하며 정유정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 입덕 하게 되었습니다. 우울하거나, 멍 때리거나, 무얼 하면 좋을지 고민이 들 때마다 선반에서 쉽게 꺼내어 어느 페이지든 펼친 다음 읽어 내려갔습니다.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세는 걸 관둘 정도로 말이죠.

그러다 2015년 책이 영화화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볼까 말까 무척이나 고민했습니다. 너무도 좋아하는 책이기에 제가 책을 읽으며 그렸던 캐릭터들의 생김새와 수리희망병원의 곳곳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에서 본 그대로 뇌리에 박혀 벼릴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15세 관람가에 102분의 다소 짧은 러닝타임으로 승민을 이민기 배우님이, 수명을 여진구 배우님이 연기했습니다. 전 결국 끝끝내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배우들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승민과 수명의 캐릭터가 각인돼 버린 게 싫었기 때문입니다.

<내 심장을 쏴라>라는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하고 단순하게 말해버리기엔 이 책의 묘미가 너무도 퇴색되는 것 같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청춘들을 위한 연가, 찬가라고 하기에도 책은 청춘보단 좀 더 넓은 인류애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골칫덩이였던 수명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단 아버지의 오래된 책방에서 책 속 세상에 흠뻑 빠져 지내는 것을 훨씬 좋아했습니다. 정신병력이 있는 어머니를 누구보다 끔찍이 아끼는 아버지는 생계를 책임지고 어머니와 수명을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벅찬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사건의 시발점은 그렇게 살려고 고군분투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수명에게 어머니와 책방을 맡기고 잠시 외출을 나간 아버지. 수명은 자신이 어머니의 식사와 약을 제때 챙겨드린 것인지, 어머니의 방문을 잘 잠겄는지, 어머니의 손이 닿을 만한 곳으로부터 날카로운 물건들을 모두 치웠는지 등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들은 잊은 채 책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수명과 아버지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수명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와 함께 '목소리'가 찾아오게 됩니다. 수명의 아버지는 아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수리희망병원으로 보내고 그곳에서 수명은 자신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승민을 만나게 됩니다.

난장판인 우리들 삶에 늘 행운이 함께 하기를

승민은 수명과는 태생부터가 다른 사람입니다. 이 녀석을 피하라고, 엮여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수명의 오장육부가 경고하죠. 그럼에도 수명은 자신이 원한 삶을 살지 못한 것에 한풀이라도 하듯, 승민을 돕게 됩니다. 매번 독방에 감금돼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전기 충격 치료라는 현 세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행위들을 감내하면서 말이죠. 책은 승민과 수명의 이야기뿐 아니라 김용, 만식, 십운산 선생, 현선이 엄마, 지은이와 한이 등 수리희망병원에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수감된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다룹니다. 그래서 한층 더 난장판인 동시에 다채롭고 풍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응축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울한 청소부, 보호사 최기훈, 윤보라 간호사, 렉터 원장에서부터 최강 빌런인 점박이까지 수리희망병원에서 근무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도 함께 풀어냅니다. 정유정 작가님이 실제 정신병원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쓴 작품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실화일 법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실화란 사실에 소름 돋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과거 우연한 기회로, 실은 제가 아주 노력한 끝에 정유정 작가님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작가님의 책이란 책은 모조리 들고 가 사인을 받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몇 권만 가져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7년의 밤>이란 책이 막 발행되었을 때라 어떻게 그런 소설을 구상해 냈는지에 대해 주로 듣게 되었습니다. 역시 작가라는 직업의 특징인지 모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감수성이 일반인인 저보다 훨씬 예리하고 남다르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종의 기원>부터 <완전한 행복>까지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많이 그려내고 있는데 다시금 작가님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이번 책의 이야기는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 꼭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어딘가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 정유정 작가님께 늘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