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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작별인사] by 김영하, 직박구리가 죽은 날

by 곰푸 2022.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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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과 하얀 소금사막 같은 곳에 고독하게 서있는 검은 형체의 표지.

그리고 이어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다소 난해한 문구.

육신이니, 소멸이니, 죽음이니, 회상이니 하는 철학적 용어들.

책의 첫 느낌은 "뭐야, 되게 무게잡네" 정도였다.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가 너를 잊게 될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자작나무숲에 누워 나의 두 눈은 검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한 번의 짧은 삶, 두 개의 육신이 있었다.

지금 그 두번째 육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 어쩌면 의식까지도 함께 소멸할 것이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이 머릿속에서 폭죽 터지듯 떠오르기 시작한다. 한때 회상은 나의 일상이었다.

순수한 의식으로만 존재하던 시절, 나는 나와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기억을 이어 붙이며 과거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이야기는 직박구리가 죽어 있던 그날 아침, 모든 것이 흔들리던 순간에서 시작됐다."

 

이 책이 인간을 닮은 기계의 이야기라는 것을,

인간을 뛰어넘은 어떠한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안 것은 책의 중반 즈음 와서다.

최근 들어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서일까. 아니면 인상깊게 본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나를 부추긴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주치고 지나치는 알면서도 모르는 인간들에 대해 희미한 짜증이 느껴지던 나날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철이와 민이, 선이의 굴곡진 감정선 보다는

그들을 만들고 그러한 상황에 몰아넣은 '인간'의 행동에 더 몰두하게 되었다.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기계를 만들어 결국은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고자 했던 '인간'의 행동 말이다.

 

백과사전에 '인간'을 치면 다음과 같은 요약 설명이 나온다.

"동물의 일원이지만 다른 동물에서 볼 수 없는 고도의 지능을 소유하고 독특한 삶을 영위하는 고등 동물"

철학 사전은 더 웃기다. "인간은 지구상의 생물의 발전에 있어 최고의 단계에 있다."

고도의 지능, 독특한 삶, 최고의 단계.

백과사전이라면 철학자들이라면 인간은 조금은 납득할 수 있게 정의할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실망이다.

 

철이와 민이, 선이 중 민이의 죽음은 자의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선이의 죽음은 자의였을까?

늙고 병들어 육신이 죽는 것을 자의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말한다. 인간은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고.

민이가 최후에 자신의 육신의 죽음과 의식의 소멸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다운 존엄한 죽음이었을까?

그렇다면 선이보다 민이가 좀 더 "인간에 가까운, 인간다운" 존재였던걸까?

 

철이와 민이, 선이의 모험기로 읽히기에는 너무도 많은 질문거리가 남는 책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 인류애가 넘치는 시기에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 땐 저 질문들 중 몇 가지라도 나만의 답을 내릴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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