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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공정하다는 착각 by 마이클 샌델

by 곰푸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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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 있는 그 자리, 정말 당신의 능력 때문인가?"

내가 오늘 하루만 해도 직장에서 떠들어대는 상사를 보며, 뉴스 속 망언을 내뱉는 정치인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던 말.

조선시대처럼 신분과 계급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흙수저, 금수저 등 부모 혹은 집안의 '보유자산'으로 인해 또 다른 계층이 생겨났다. 출발선이 다르고, 달리는 레일이 다른데 앞만 보고 달리면 누구나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다며 "하면 된다"는 허울좋은 말로 포장된 사회.

 

나 역시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더 앞서서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중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며, 대학 진학 이후에는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공부했고, 임관해서는 더 나은 평가를 받기 위해 야근하고, 전역 후에는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그리고 주변으로부터 무수히 많이 들었던 말 '하면 된다'

 

"우리의 재능이 노력의 결과가 아님을 인식하면 자수성가의 그림이 복잡해진다. 그것은 편견과 특권을 극복하는 것만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에 충분하다는 능력주의 신념에 회의를 가져온다. 우리 재능과 천분이 누군가에게 빚진 것이라면(유전이든, 우연의 결과든, 신의 선물이든), 우리가 거기서 비롯된 혜택을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 하는 것은 실수이자 자만일 것이다."

- 성공의 윤리 (201 ~ 202p)

 

일정 시점 이후부터는 이 '하면 된다'라는 말이 힘을 불어넣어 주기 보다는 들으면 들을수록 진이 빠진단 느낌을 받았다. 내가 지쳐서 그런거겠지 하며 넘겼었는데 마이클 샌델의 책을 읽고 나니 그 말이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지만 좌절감과 모욕감을 주는 양날의 검 말이다.

 

책은 전반적으로 미국의 상황에 빗대어 능력주의의 허상과 폭정에 대해 서술하였지만 많은 부분이 와닿았다. 물론 힐러리와 오바마와 트럼프 등 미국의 정치 상황까지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나로써는 느낌으로 넘긴 부분도 많지만 말이다. 한국 역시 미국 못지 않게 분열되어 있으며 그 더러운 속사정을 덮기 위한 기득권 층의 능력주의 논리가 저변에 작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종종 기회의 평등의 유일 대안은 냉혹하고 억압적인 결과의 평등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또 다른 대안이 있다. 막대한 부를 쌓거나 빛나는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도록 할 수 있는, '조건의 평등'이다. 그것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 일에서 역량을 계발하고 발휘하며, 널리 보급된 학습 문화를 공유하고, 동료 시민들과 공적 문제에 대해 숙의하는 것 등으로 이루어진다."

-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 (348p)

 

책을 다 읽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느낌을 읽던 중 개인적으로 웃겼던 부분이 있다. 마이클 샌델이 말한 능력주의의 폭정, 학벌주의의 폐해에 깊이 공감한다고 써놓고는 정작 마지막은 대입 논술, 면접 보러 가기 전 필독서라고 추천해 둔 부분이었다.

 

그렇지, 역시.

1권의 책을 읽었다고 우리 의식 저변을 지배하는 학벌주의, 능력주의의 뿌리를 뽑기엔 아직 무리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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