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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by 룰루 밀러

by 곰푸 2022.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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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 룰루 밀러
  • 출판 : 곰출판
  • 출간 : 2021.12.17.
  • 장르? 과학/공학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이중성

책을 읽기 전 책 표지를 먼저 보는 편이다. 이 책의 표지는 일단 인어가 등장하고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과 함께 헤엄치는 몽환적인 듯하면서도 드로잉 기법이 섬뜩하다고나 할까. 알고 보니 바늘을 기본 도구로 사용한 스크래치보드 기법이라고 한다. 몽환적인 느낌과 동시에 섬뜩하다는 이중적인 감정을 가진 이유는 바늘의 날카로움과 긁어내는 기법 때문이었나 보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의미는 없어! 진실은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 54p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의 장르는 도대체 뭐지란 생각을 계속했다. 책의 마지막 부분, 에필로그까지 다 읽은 순간까지도 작가의 자전적 성장 스토리 같기도 하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란 인물의 생에 대한 탐사 르포 혹은 고발 르포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문득 놀랐다. 아, 나는 또 장르를 분류하고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이렇게 호모 사피엔스란 무언가 분류하고 재단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종족인가 하고  말이다.

 

"이 우주에서 아직은 미지의 한 조각에 불과한 새로운 물고기를

한 마리 한 마리 잡아나가고,

새로운 이름을 하나씩 붙일 때마다

믿을 수 없는 도취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혀에 닿는 그 달콤한 꿀, 전능함에 대한 환상, 그 사랑스러운 질서의 감각.

이름이란 얼마나 좋은 위안인가.

-89p

 

트레바리 모임을 통해 읽은 책이라 그런지 책을 읽으며 모임 중 읽었던 이전의 책들이 모두 떠올랐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책이 내게 주었던 메시지들은 어렴풋하지만 삶의 의미에 관한 책도, 차별에 관한 책 그리고 인생의 무기력감에 관한 책도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이 느끼는 인생의 무력감은 '최애, 타오르다'의 주인공과 겹쳐 보였고, '패싱'에서 아이린과 클레어가 당한 차별은 책 속 우생학과 연결된 듯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개인은 지구에 있어, 나아가 전 우주에 있어 개미만큼도 중요한 존재가 아니란 아버지의 말을 반박할 근거를 평생 동안 찾아 헤맨 주인공에게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란 책을 권해주고 싶었다. :)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228p

 

한 인물의 삶을 조명하고 고발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듯 전개되는 책을 통해 책 속의 책을 또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의 초반부에는 이런 전개 방식이 몰입하기 어려웠지만 중반부를 지나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란 인물의 심리 추적극을 보는 듯해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의 믿음으로 인해 다른 누군가는 상처 입을 수 있음을. 가끔은 어떤 사람의 믿음이냐에 따라 상처 입는 이들의 수가 걷잡을 수 없단 사실이 섬뜩했다.

 

그는 자신의 관용과 관대함을 자랑스러워했다. (...)

하지만 조던은 파리 한 마리를 잡는데 대포알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 151p

 

종과 종 사이에 계층이 있다는 그릇된 신념.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종들의 우위에 있다는 헛된 믿음. 이 책을 읽은 어떤 이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족에 혐오를 느껴 물고기를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물고기에서 육식동물로 확장되어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음, 난 그렇게까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저런 우월감에 젖은 그릇된 신념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p.s.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지만... 물고기는 맛있으니까!!!

 

자,

이렇게 희망을 놓아버린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할까?

-208p

 

"그런데 물고기를 포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2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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