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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by 심너울

by 곰푸 202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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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예은 작가의 <칵테일, 러브, 좀비>를 시작으로 안전가옥의 쇼-트 시리즈를 접하게 되었다. 후루룩 읽히는 내용과 들고 다니며 읽기 좋은 책 사이즈에, 최근 어려운 책을 읽었더니 머리도 식힐 겸 서점을 들를 때마다 시리즈 2-3권씩 구매해서 읽는 중이다. <칵테일, 러브, 좀비> 다음으로는 안전가옥 쇼-트의 첫 번째 시리즈인 심너울 작가의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일하다 잠깐 바람 쐬러 들린 서점에서 골라서일까.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안 좋은 습관인걸 알면서도 책에 대한,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느낌대로 책을 고르는 편이라. 이번 책도 심너울 작가가 SF어워드 2019를 수상한 작가임을 책을 다 읽고서야 알았다. 2018년 6월 첫 작품을 필두로 이후 1년 반이란 짧은 기간 동안 무려 21편의 작품을 발표했다는데. 그렇게나 많은 글들을 써내다니 엄청난 글쟁이임이 틀림없다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작가가 쓴 것 같은 작가 소개글이 참신해서 발췌했다.

"서강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안타깝게도, 바란 바와 달이 그 경험은 자아 탐색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회한이 많아 이불을 자주 찼더니 레그 레이즈만 잘하는 기묘하고 빈약한 신체를 갖게 되었다.

별개로, 현실의 경계 끝자락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을 즐긴다."

<정적>

평소 주변의 소음들에 예민한 편인 나는 잘 때 작은 소리만 들려도 잠을 곧잘 뒤척이곤 했다. <정적>은 어느 날 특정 행정구역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에서 갑자기 소리가 사라진 사건에서 시작된다. 소리가 사라지자 갑작스레 찾아온 당황스러운 정적. 그렇게 '나'는 듣지 못하게 되자 비로소 '들리게' 된 '나'와는 사뭇 다른 청각장애인들의 세상. 그렇게 소리가 없어지자 다른 일상들이 '나'를 채우게 된다. <정적>은 '만약 소리가 사라진다면?'이라는 기발한 상상에서 시작하여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알 수 없었을 특별한 세상을 짧게 그려낸다. 제약이 때로는 또 다른 시작의 발판이 될 수 있음을 전하는 작품이랄까.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

이 작품은 뭐랄까, 한 마디로 신선했다. 실제로 잦은 연착으로 악명 높은 경의중앙선을 다룬 블랙코미디라고 하는데, 해당 노선을 이용해 본 이들이라면 웃픈 작품이 아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SNS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연착되는 전철을 기다리다 못해 역에 구속되어 버린 경기도민의 한 맺힌 하소연이랄까. 비약을 조금 보태자면 이렇게나 출퇴근하기 힘든, 일자리는 죄다 서울에만 모여있는데 살 곳은 없는, 현실 비판 작품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참신한 제목으로 내 시선을 사로잡은 이 작품은 일주일 중 금요일을 가장 애정한 9급 공무원 김현의 다소 SF적인 이야기다. 동사무소에서 일하며 민원인들의 억지 아닌 억지를 무표정과 영혼 없음으로 대하는 데 지친 김현은 평일은 죽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럼 김현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금요일 무한 반복 속에 살게 되자 전보다 전보다 더 뒤틀린 일상 속에 살게 된다. 출근하기 전에 퇴근하고 싶고, 출근하면서 퇴근하고 싶고, 퇴근하면서 또 내일 출근하기 싫은 현실 직장인 1인으로서 씁쓸한 끝 맛을 남긴 작품이다.

<신화의 해방자>

본격적인 '마법'과 '용'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작품이다. C+ 정도의 마력을 타고난 동물애호가 유소현이 세계적인 생명공학 기업 '셀트린'에 취직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현은 용의 조직을 이식한 쥐들 가운데 실패작을 선별하여 죽이는 업무를 한다. 어느 날, 소현의 백팩 안에 용의 유전자가 강하게 발현된 쥐가 숨어들고 이로 인해 소현은 자신의 안정적인 미래와 흔들 만큼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용순이'를 해방시키며 자신의 삶까지도 해방시킨 소현의 일대기다.

<최고의 가축>

앞서 등장했던 생명공학 기업 '셀트린'이 다시 등장한다. 개인적인 추측인데 <신화의 해방자> 이전 시간대가 아닐까. 한반도를 수호하는 용 이스켄데룬은 북미 대륙을 수호하는 용 아이발리크와의 싸움 끝에 왼쪽 날개에 큰 부상을 입고 관악산 깊은 곳에 430여 년 간 잠들어 있었다. 어느 날, 셀트린에서 파견된 직원 한 명이 용의 둥지에 방문하고, 긴 시간 동안 발전시킨 인간의 문명에 대해 알려준다. 그렇게 인간을 가축 삼아 거느리며 수천 년 간 군림했던 용 이스켄데룬은 인간이 주는 식량과 디지털 문명에 점점 눈과 귀가 어두워지게 된다.

짤막한 줄거리를 통해 알 수 있듯 심너울 작가는 보편적 부조리를 기발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때로는 구체적인 설명보다 판타지가 가미된 비유가 더 정확하게 현실을 정조준하는 경우가 있다. 심너울 작가의 작품 속 허구의 설정들이 현시대의 진실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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